LOVE FICTION 03 > FIC. |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LOVE FICTION 03

  • 김구파
  • 03-09
  • 511 회
  • 4 건



 

 

좋은 아침, 우리 똥강아지. 언제나처럼 산뜻한 인사의 희영이 축 쳐진 도운의 어깨를 톡, 두드렸다. 도운 역시 제법 가벼운 웃음을 보였지만 그 아래에 은근한 피곤함이 비쳤다.

“그러게 아르바이트는 하지 말라니까.”

“개안타. 금방 익숙해진다.”

그런 도운이 안쓰러운 마음에 입술을 삐죽이던 희영이 도운의 한 쪽 팔에 제 팔을 끼웠다. 어제 파티 갔다메? 어땠노? 자몽 주스가 나왔는데 진짜 아주 거지같은 맛이었다. 우웩. 둘은 익숙하게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학교 교문을 스쳐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맹렬하게 꽂혀드는 시선이란.

“강희영. 아까부터 느꼈는데 사람들이 우리만 쳐다보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다.”

“아니. 학교 들어선 뒤로 더 노골적인 것 같은데.”

“기분 탓이라니까.”

네 팔짱 때문은 아니고? 도운은 그렇게 되묻고 싶었지만 괜한 말을 덧붙여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희영의 심기를 거스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 어쨌든 이것도 그녀가 도운이 저와 같은 학교에 다니길 바라던 이유 중 하나였을 테니까. 잘 정돈된 길 양 옆으로 푸른 초록의 나무가 늘어선 교정을 한참이나 태연히 걷고 있을 때였다. 희영의 가느다란 팔목과 얽힌 도운의 손목을 잡아채는 손길이 불쑥 달려든 것이.

“...뭐고?”

갑작스레 제 손목을 잡아 쥔 사람은 도운이 묻고 싶은 것을 대신 물어주는 친절까지도 베풀었다. 아니. 애초에 그게 친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그의 물음에 대꾸를 내미는 것은 갑자기 두 사람을 멈춰 세운 손길에 잠시 날 선 눈매를 해 보이던 희영이었다.

“안녕, 성진아. 아침인사로 뭐고? 는 좀 이상하지 않나?”

그 손길의 주인이 성진인 것을 확인한 그녀가 금세 날 선 눈길 대신 샐쭉이 웃어 보였지만, 그 웃음이 마냥 맑지는 않아 그 사이에 낀 도운만 시선을 데구르르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성진은 희영의 인사를 가볍게 무시하고는 제 시선이 닿은 손목의 당사자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조막만 한 입매를 단단히 굳힌 채. 도운은 제 앞에서 웃으며 성진을 노려보는 희영이라던가, 제 손목을 움켜 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손길에는 크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꼭 달걀을 감싸 쥔 듯 가벼워 조금도 무리가 가지 않게.- 성진의 물음에 무어라 답을 주나 고민을 삼키다 이내 떠오른 생각에 짧은 탄성을 질렀다.

“아.”

갑작스러운 도운의 목소리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도운의 얼굴을 향했다. 도운은 빈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이다 금세 제 손목을 쥐고 있던 성진의 손을 풀어내어 그 위로 올렸다.

“니 어제 잔돈도 놓고 갔다.”

도운이 성진에게 건낸 것은 동전 몇 개. 그에 성진의 한 쪽 눈썹이 들썩였지만 도운은 크게 개의치 않은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앞으로는 못 마시는 커피 말고 마실 줄 아는 콜라 마시라. 편의점 가서.”

“....못 마시는 게 아니라.”

“그래. 안 마시는 거 말고. 괜히 돈 지랄 하지 말란 소리다.”

“...이것도 필요 없,”

“테이크 아웃은 팁 안 받습니데이, 손님.”

성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 눈을 깊게 감았다 뜬 도운이 매섭게도 톡, 쏘아 붙였다. 그에 희영이 조그마하게 웃음을 터트렸지만 금세 흠흠. 헛기침과 함께 삼켜내었다. 성진은 몇 번인가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어딘가 거슬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민망해 보이기도 하는 얼굴에 희영의 입가가 연신 간질거렸다.

“...팔짱은 왜.”

제 말을 툭 자른 도운에게 진 기분이라도 든 것인지 한 참이나 말을 고르다 겨우 꺼낸 물음은 다시 돌아온 화제였다.

“친구니까.”

이번에 대답을 내민 것은 희영이었다. 더 할 나위 없이 산뜻하고, 유쾌하게. 그리고는 꼭 그 어조와 같은 걸음으로 다시 도운의 팔을 당겨 안고는 등을 돌린 그녀의 얼굴 가득 장난기가 번져 있었다. 쉽게도 제 손목을 놓은 성진의 손바닥에서 묻어난 열이 교실을 들어갈 때까지도 남은 것 같아 도운은 연신 제 손목을 문질렀다.

 

*

 

흐아암. 책상 위에 기대어 있던 도운의 입이 벌어지며 노곤한 숨이 흩어져 나왔다. 어제는 유난히 손님이 많았고, 덕분에 자정이 다 되어서야 마칠 수 있었던 탓에 하루 종일 하품이 멈추지 않았다. 오늘은 과제도 없고, 아르바이트도 쉬는 날이었다. 집으로 가자마자 침대 속에 뛰어 들어야지. 굳은 다짐을 하는 도운의 눈꼬리에 촉촉한 습기가 방울졌다.

“잠 못 잤나?”

“어, 어제 좀 늦게 마칫다.”

한쪽 팔을 베고 누운 도운의 머리칼을 다정스런 손길로 쓸어 넘기는 희영의 물음에 조금 잠긴 목소리로 대답을 내어 놓았다. 아이고야. 도운의 대답에 희영의 양 눈썹이 추욱 쳐졌다. 그러나 그도 잠시, 다시 생기 넘치는 -사실은 장난기가 넘치는- 얼굴을 해 보인 희영이 한껏 고개를 숙여 도운의 귀에 작게 소근 거렸다.

“그러니까 얼른 니 등 뒤에서 내를 아주 그냥 태아죽일라고 째리보는 저 소갈딱지 왕자님을 받아 주라니까.”

그녀의 목소리 끝에 매달린 웃음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도운이 입술을 삐죽였다.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라.”

“이상한 소리라니. 내 진지하다?”

“니, 그 얼굴부터가 안 진지하다.”

“상관 있나? 왕자님 눈길은 끝내주게 진지하다.”

낄낄, 웃음을 흘리던 희영이 짧게 도운의 등 뒤로 곁눈질을 해 보였다. 도운은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제 등을 불을 켜고 노려보는 그 까만 두 눈을.

며칠 전 아침 이후로 성진은 도운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하루 종일 노려만 볼 뿐. 꼭 삐친 어린 애처럼 말은 안 하면서 매서운 눈길을 해 보이는 것이 여간 마음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게 학교에서만이면 말도 안 해. 제가 일하는 카페 앞에 꼭 하루 한 번은 찾아 왔다. 제 말을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는 것인지, 주문 대신 길 건너에서 한 참을 바라만 보다 이내 사라졌다. 일을 하다가 잠시 시선을 돌리면 꼭 성진이 보이고는 해, 도운은 자꾸만 마음이 껄끄러웠다. 왜. 뭔데. 뭐. 뭐. 왜 그러는데. 한껏 입술을 삐죽여 보지만 그저 쳐다보는 걸로 뭐라 말을 하기에도 좀.…

“와 자꾸 그래 보노?”

그런 건 아는데, 지금은 이 불편한 마음이 더 싫었다. 책상에 엎드렸던 도운이 벌떡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리며 쏘아 붙이 듯 물었다. 꽤나 갑작스러운 물음에도 성진은 미동도 없이 여전히 도운을 노려 볼 뿐이었다.

“.....”

“뭐. 뭐. 그래 째리 보지만 말고 말로 해라, 말로.”

“...니는 와..”

일자로 꾹 다물고 있던 성진의 입술이 아주 느리게 열렸다. 그 목소리가 답지 않게 작아 도운은 고개를 그의 자리로 가깝게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내, 뭐. 뭐.”

“닌 와 그렇게 이삔데?”

“......”

이번에 입을 다문 것은 도운이었다. 희영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려 두 주먹을 꽉 틀어쥐고 부들거리며 몸을 떨었고, 성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리를 떴다.

“어? 성진아, 니 열 나나? 얼굴이 벌겋노?”

교실 뒤에서 농구공을 만지작거리며 놀던 급우의 걱정스런 목소리를 등 뒤에 매단 채 교실을 벗어나는 성진의 걸음이 분주했다.

 

*

 

너 나 좋아하냐? -라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묻지 않은 것은 돌아올 대답에 내어 줄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했을 때에도, 아니라고 했을 때 에도. 도운은 그것을 도통 어색하지 않게 넘길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성진이 저를 좋아할 이유가 없다. 저는 길 가다 발에 채일 만큼 흔하게 생겼고, 그렇다고 제가 성진에게 다정스레 군것도 아니었는데 성진은 제게 예쁘다는 소릴 내민다. 그것부터가 저를 놀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제가 성진이나 희영만큼 여유롭게 사는 편도 아니고, 부모의 그늘 안에 사는 것도 아니었으며, 심지어는 아르바이트가 왜 필요한지를 이해도 못 하는 애인데 왜 저처럼 가난하고 피곤하게 사는 애랑 엮이려 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진 게 모자라는 애도 아니고, 성적도 좋다던데. 생긴 것도 무슨 드라마 주인공같이 생겨 먹은 게.

마감을 30분 앞 둔 한적한 카페의 카운터에 앉은 도운의 뺨이 성진의 생각으로 심각해 있었다. 한 손에 턱을 괸 채 다른 손으로는 바닥을 톡톡 두드리던 도운의 앞에 그 생각의 주인공이 나타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뭔 생각 하노?”

“아, 깜짝이야!”

멍하니 시야까지 흐트러진 머리 위로 툭 떨어진 목소리에 어깨를 떨며 놀란 도운이 반걸음쯤 물러섰다. 그 모습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성진의 손이 도운의 손을 쥐었다.

“....넘어질까 봐.”

묻지도 않은 대답을 쥐어 준 성진이 금세 잡은 손을 놓았다. 도운은 성진에게 잡혔던 손을 쥐었다 펴며 슬쩍 고개를 숙였다.

“뭐고. 닌 뭐 갑자기 소리도 없이 나타나노, 맨날?”

갑자기 나타난 성진에 놀란 마음을 숨기려 애써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꾸며내었지만 도운은 저도 모르게 점점 그 끝이 흐려졌다.

“아까부터 있었는데 니 자는 것 같아서.”

“안 잤다.”

“응. 눈은 떴더라.”

도운의 말을 받아치는 성진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스며 있었다. 큼지막하고 둥그런 눈가가 슬쩍 가늘어지며 가지런히 자리한 입꼬리가 매끄럽게 올라간 모습에 도운은 괜스레 제 뺨을 긁적였다. 쓸데없이 민망하고, 어딘가 쑥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와 왔는데?”

그래서 겨우 말을 돌린다는 것이 저런 퉁퉁한 소리였다. 이렇게 퉁명스러울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아차, 싶었지만 굳이 되돌리지는 않은 채 그저 제 앞에 놓인 카운터 테이블만 만지작거리는 도운이었다.

“보고 싶어서.”

꿀꺽. 도운은 순간 제 목구멍을 넘어간 침 소리가 성진에게도 들렸으면 어쩌지 생각이 들었다. 예쁘다는 소리만 할 줄 아는 줄 알았는데 이번엔 새로운 공격이었다. 순간 도운이 눈썹을 출렁이며 성진을 시야에 담았다. 제 앞에 선 성진은 다시 언제나와 같은 무던한 얼굴로 네이비 색의 점퍼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였다.

“박성진”

그런 성진을 부르는 도운의 목소리가 좀 전과는 달리 진지함이 가득 묻어났다. 성진은 얘기하라는 듯 눈짓을 넘겼을 뿐 입술은 꾹 다문 채였다.

“장난은 그 쯤 해라.”

“...? 장난?”

“그래. 내한테 예쁘다느니 어쩌느니. 그런 식으로 괴롭히는 거 있다아이가.”

“...괴롭혀?”

“내가 뭘 잘못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건 너무 유치ㅎ...”

“내가. 니를. 괴롭히고 있어?”

도운의 말을 자르고, 문장의 음절 음절을 끊어 말을 내는 성진의 목소리가 조금 전 보다 한 톤 쯤 낮아져 있었다. 그 까만 시선 역시 이제 아래를 향해, 무엇인가를 가늠하는 듯 가늘어 져 있었다. 도운은 잠시 말을 고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괴롭히는 게 아니면 니가 내한테 와 이런 장난을 치는가 잘 모르겠다.”

도운의 대답에 성진은 다시 시선을 들어 올렸다. 저의 것과는 또 다른 새까만 시선이 도운을 가득 담았다. 성진은 한 참이나 도운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고, 도운은 그 집요한 시선에서 고개를 돌리지도 못 한 채 숨을 죽였다. 그러니까..내가 지금 좀..말을 잘못 고른 것 같은데 말이야.

“괴롭히는 게 아니라.”

“어?”

한 참 만에 입을 연 성진의 목소리에는 옅은 한 숨이 배어 있어 도운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굳히고 되물었다.

“좋아해서 그런다.”

“...어어??”

“좋아해서 그런다고.”

“누구를?”

“니를.”

“누가?”

“내가.”

“...왜?”

“니가 예뻐서.”

성진의 것에 비하면 크지도 않은 눈을 둥그렇게 뜬 도운이 몇 번이나 반문하고, 담담한 성진의 대답이 이어진 몇 번의 대화가 사그라지자 다시 한 번 침묵이 내려앉았다. 네가 예뻐서 너를 좋아한다는 성진의 말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도운이 몇 번이나 눈을 껌뻑이고만 있자, 이번에는 보란 듯이 어깨를 들썩이며 한 숨을 내 쉰 성진이 다시 한 번 손을 내어 도운의 손등을 덮었다.

“내가 태어나서 본 것 중에 니가 제일 예뻐서 니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그 좆같은 편의점 유니폼을 입어도 예쁘고, 그 유치한 노란 색 앞치마를 둘러도 니는 예쁘더라.”

“장난은 그 쯤,”

“장난 아니고, 괴롭힘도 아이다. 근데 우리 이런 멍청한 대화를 계속 해야 되나?”

“아니, 성진아. 나는..”

“니는 대답이나 생각해라.”

이젠 제법 짜증이 올라 온 듯 날이 선 성진이 도운을 향해 톡 쏘아 붙이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주눅이 든 도운이 성진에게 잡힌 손을 뺄 생각도 못하고 성진의 눈치를 살폈다.

“...무슨 대답?”

“그래. 성진이 니랑 사귈게.”

“...”

“라는 대답.”

너무도 당당히 제 답까지 정해 준 성진의 얼굴에 단호함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선택지도 주지 않은 요구였다. 잠시 벙 찐 얼굴로 성진을 올려보는 도운의 얼굴에 슬쩍 웃음을 머금은 성진이 제 손목에 걸린 시계를 보더니 자리를 떴다.

“내 간다. 내일 보자.”

세상 황당한 고백을 남겨둔 장본인은 그렇게 쌩하니 가게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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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제가 사실 드라마 상속자들을 참 재밌게 봤으며

최애 캐는 보나였습니다....

그런 의미로 희영이를 참 좋아해요


가볍게 쓰는 글이니

가볍게 읽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profile
    • 곰개 26-03-10
    아 로코재질 청게 너무 맛있어요
    손발 오그라들다가 미쳤나봐 외치면서 이불 차다가 싱글벙글🤭
    1. profile
      • 김구파 26-03-10
      솔직히 쓰면서도 오글거리는 구간이 있었지만 이런 건 다 그 맛으로 본다...생각하고 참아주십셔! 히히 재밌게 봐 주세요옹♡
  2. profile
    • 해멀러 26-03-10
    최고여요
    달다달다....이 다 썩었어요 지금
    1. profile
      • 김구파 26-03-10
      아이고 치카포카 얼른 하셔요 8ㅅ8 ! 재밌게 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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